2017년 1월 22일 본향교회 주일 설교
삶의 근거: 하나님의 말씀
본문: 시편 119,105-112
지난 주간에 한국의 한 교회에서 방문한 청소년들과 함께 마르틴 루터의 유적지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루터는 1521년 Worms에서 열렸던 제국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황제와 제국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가 한 말은 명언이 되어서 루터 유적지 도처에서 그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Hier stehe ich. Ich kann nichts anders. Gott helfe mir, Amen!”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떤 다른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 주세요. 아멘!”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해 봅니다. “저는 성경의 진리를 따라 말하고, 양심이 이끄는 대로 주장했습니다. 그런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제 앞에 있는 세상 권력이 두렵다고 더 이상 뒤로 물러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 회의 후에 루터의 몸은 자유롭게 풀려났지만 실상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루터는 작센 선제후의 보호 아래 Eisenach에 있는 Wartburg 성에 숨어 들어가서 몇 달 동안 수염을 기른 채 가명을 쓰고 다른 신분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는 그 Wartburg 성을 돌아보고 루터가 머물렀던 방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루터는 5개월 가량 있으면서 했던 일이 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갇힌 것 같은 상황에서 그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했습니다. 바로 신약 성경을 헬라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때 이미 독일어 번역이 없지는 않았지만, 루터는 가장 올바르게 번역하고 싶었고, 모든 독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준적인 독일어를 사용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는 왜 그 일을 했을까요? 왜 성령님은 루터에게 이 일을 맡기셨을까요? 루터는 진작에 성경 말씀에 대한 큰 열정과 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그 말씀을 통해 진리를 이 세상에 건져 올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은 어두운 길을 더듬어 나가는 인류에게 빛을 비춰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빛은 루터나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빛을 비춰주는 역할을 할 뿐이었습니다. 이 빛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제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105절).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사는 방법, 사는 이유! 그리고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의 해결이 다 말씀 속에 있습니다. 길을 잃었다 싶을 때, 기준이 되고 지침이 되어 다시 바른 길을 가게 해 주는 것도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106절에는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허물어뜨리지 않고, 의롭게, 착하게, 서로 사랑하며, 성실하게, 너그럽게, 진실하게 사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하고 결심하고 사는 삶은 얼마나 튼실합니까!
지난 목요일, 1월 19일에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도시 Nuneaton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그곳 영국 교회에서 현지인 사역을 하시던 윤태대 목사님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저보다 두 살 위, 신학교는 일년 선배인 목사님이셨습니다. 저희와는 잘 아는 사이였고, 윤 목사님 자녀들과 저희 아이들도 잘 아는 사이입니다. 저는 윤 목사님이 이 시대에 보기 드문 분, 여러 면에서 독특하시면서도 진심으로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분이셨다고 믿습니다. 제가 매우 존경하는 분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성탄절을 앞둔 작년 12월 21일에 갑자기 심정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신학교 동기들이 장례식을 앞두고 추모집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제가 평소 그 분에 대해 잘 아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일테면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온유하고, 꾸준한 성품의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잘 몰랐던 내용도 나왔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 평생 노력하며 사셨다고 합니다. 행동으로든, 마음으로든 말씀에 어긋났다 싶으면 그렇게 가슴 아프게 회개했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추억하기를, 뭐 그런 것까지 회개하시나 싶을 정도로 아버지는 말씀과 철저하게 일치되게 살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 부분이 제게 참으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며, 우리 생활이나 언행을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서 살고 있는가? 말씀에서 벗어날 때 심각하게 반성하면서 사는가? 하나님 말씀대로만 산다면 은혜롭고, 남을 행복하게 하고, 자신도 행복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세상 사람들도 기뻐할 그런 사람이 될텐데! 우리는 말씀이 요구하는 생활보다 내 자신이 요구하는 생활에 빠져있지 않는가? 말씀에 대한 긴장감과 열심은 없고 그저 보잘것 없는 지식과 경험으로 자주 남을 판단하고, 나를 옳다 여기면서 살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말씀이 삶이고, 삶이 말씀이 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필요할 때마다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평소에 예수님께서 성경(구약) 말씀에 얼마나 익숙하고 말씀이 생활화 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마태복음에 따르면 세 번의 유혹에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신명기 8,3).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명기 6,16).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명기 6,13).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61,1 이하를 찾아 읽으셨습니다. 자신이 누구이신지, 자신의 사역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청중으로 하여금 알게 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18-19절). 그리고 21절에서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셨고,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을 잘 알고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실제로 말씀대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게 사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판단하시고, 행동하시고, 결정하신 모든 것은 진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이 되시도록 사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말씀이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자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6). 그때 예수님은 열 두 제자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68-69). 베드로의 이 고백은 중요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으니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 풍성하게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이 오늘도 도처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도 있어야 하고, 목회자에게도 있어야 하고, 교인들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있을 때 진정한 교회이고, 참된 목사이고, 교인다운 교인입니다. 말씀을 붙드는 인생이 가장 잘 살고 있는 인생입니다.
이번에 함께 여행했던 청소년들과 선생님들을 보니까 바쁜 일정 속에서도 꼭꼭 하는 게 있었습니다. 하루 일정이 끝난 밤에는 30분 이상 기도회를 하고, 아침에는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함께 모여 30분 동안 그날의 QT를 하였습니다. 수요일 밤에는 Eisenach에서 숙박을 했는데 숙소에는 공용 샤워실 뿐이었고, 아침 식사를 7:30에 하고 바로 떠나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습니다. 전날 밤에 공지하기를, 다들 아침 7시에 모여서 QT하고 아침 먹고 바로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놀랐습니다. (부족한 샤워실임에도) 7시 전에 다 씻고, 단장하고, 짐도 다 싸고, 떠날 준비를 다 해놓고, 한 학생도 빠짐 없이 모두가 그렇게 약속된 시간에 모여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QT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열흘간의 전체 여행 일정에 저는 마지막 5일간을 함께 했는데, 불평하는 학생 하나 안 보이고 오가는 대화가 그렇게 예쁘고 성숙하고 순수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들과 인솔하는 목회자와 선생님들에게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수시로 자기들끼리 노래 부르면서 그렇게 다녔습니다.
‘예전에 우리도 매일 매일 QT 하면서 은혜롭게 살았는데, 저 어린 학생들에게서 배워야겠다.’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제가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주보부터 한 주간의 QT 본문을 실었습니다. 오랜만에 우리도 다시 말씀을 향한 시동을 걸면 좋겠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제 마음에 들리는 소리는 ‘교회를 세우지 말고 말씀을 세워라!’였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운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세워지지 않으면, 겨우 건물을 세우고, 조직을 세우고, 인간 집단을 세운 것이지, 구원 공동체, 하나님의 자녀 공동체가 세워진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부터 탐구자가 되어 그 답을 찾아가면서 교회를 인도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여러분의 인생을 세우고, 또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세워가는, 그런 진짜 인생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